‘한국 영화사 전설’ 신성일, 이젠 ‘하늘의 별’로…영결식 엄수

‘한국 영화사 전설’ 신성일, 이젠 ‘하늘의 별’로…영결식 엄수

지난 4일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의 영결식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아내인 배우 엄앵란은 이날 오전 9시 44분 원에 도착해 10시 6분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영결식에 입장했다. 배우 독고영재가 영결식의 진행을 맡았고, 지상학 장례위원장이 조사를,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영정은 10시 10분쯤 영결식장으로 옮겨졌다. 배우 이덕화, 안성기, 김형일 등이 유족과 함께 운구했다. 헌화에는 유가족 외에도 지상학 장례위원장, 배우 안성기 등 영화인들이 함께했다. 헌화 행렬은 매우 길어서 준비된 꽃이 부족할 정도였다.

엄앵란은 유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단상에 선 그는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가만히 앉아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나는 (고인을) 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누가 나에게 왜 안 우느냐고 묻는데,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한다. 그래서 억지로 안 울고 있다”라고 말했다. 

엄앵란은 농담도 했다. “신성일씨가 다시 태어나서 다시 (고인과) 산다면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며 영결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댁에 계신 부인들에게 아주 잘하세요”라고 덧붙였다. 장내에는 모처럼 작은 웃음이 일었다. 

‘한국 영화사 전설’ 신성일, 이젠 ‘하늘의 별’로…영결식 엄수지상학은 장례위원장은 조사에서 “슬프다. 그저 가슴이 먹먹하다”라고 애통함을 토해냈다.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고, 흔한 말로 같은 시대에 살았던 것이 행운이었다. 선생님은 한국 영화의 전설이었고 신화였다”라면서, 맥아더 장군이 남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변형해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영화인으로서 고인의 공로를 기렸다. “매 순간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신 선배님, 오직 영화를 위해 살아가셨던 진정과 열정을 잊지 않겠다”라며 “선생님께서 사랑하신 영화를 치열하게 기억하겠다”라고 했다.

고인은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했다. 우연히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간 것이 배우 생활의 시작이었다.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로 스크린 데뷔한 그는 ‘맨발의 청춘’(1964)을 계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으며, 주인공을 맡은 영화만 500편이 넘는다. 

유족으로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 장남 강석현·장녀 강경아·차녀 강수화 씨가 있다. 영정은 영결식을 끝낸 뒤 서울 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화장한다. 유골은 경북 영천의 성일각으로 옮겨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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