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까지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까지 ‘별일 없이 산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컬 장기하는 정규 5집 ‘모노’(Mono) 보컬 녹음을 앞두고 미국 조슈아 트리 사막에 갔다. 매니저도 없이 사막에 빠삭한 지인과 단둘이 갔다. 지인이 장기하를 사막 한복판에 내려주고 떠나면, 장기하는 그곳에서 ‘보노’의 보컬을 녹음했다. ‘혼자’라는 음반 키워드처럼, 완전히 혼자인 채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귀국해서 다 다시 녹음했어요. 하하하.” 장기하는 1일 오후 서울 의사당대로 위워크 여의도점에서 열린 ‘모노’ 음악감상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막에서 노래 실력이 늘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그곳에서 혼자 있던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노래에 녹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음반은 ‘혼자’라는 주제로 만들어졌다. 장기하는 지난해부터 ‘혼자’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혼자인 상태를,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저 모든 존재가 혼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 생각을 수록곡 ‘나 혼자’에 풀어냈다.

음반 제목 ‘모노’는 하나의 채널로 음악이 녹음되는 방식을 말한다. 두 개 이상의 오디오 채널을 활용하는 스테레오 방식이 나오기 이전에 주로 쓰였다. 장기하는 평소 선망해오던 영국밴드 비틀즈가 1960년대에 발표한 음악에서 ‘모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모노를 열등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지만, (비틀즈의 음악은) 작곡과 편곡이 깔끔해 모노 방식으로 녹음한 게 장점이 됐다”며 “우리가 늘 추구하던 게 군더더기 없는 작·편곡이라, 이번에 모노 시스템에 도전해봤다”라고 설명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까지 ‘별일 없이 산다’타이틀곡 ‘그건 니 생각이고’는 ‘사람은 다 거기에서 거기’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노래다. 2절 도입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를 샘플링해 넣었다. 장기하는 서태지에게 ‘그건 니 생각이고’의 데모 버전을 들려주며 샘플링 허락을 구했고, 서태지는 ‘매력 넘치는 노래’라는 칭찬을 덧붙여 샘플링을 허락해줬다.

이 외에도 음반에는 ‘혼자’를 테마로 한 노래가 8곡 더 실렸다. 장기하는 “주제를 정해두고 만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모아놓고 보니 ‘혼자’라는 공통점이 보였다”라고 말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동안 발매했던 노래들처럼, 이번 음반 수록곡도 모두 한국어로만 가사가 쓰였다. 음반은 이날 오후 6시 발매됐다.

멤버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진짜 ‘혼자’가 된다. 2008년 데뷔한 지 10년 만에 팀을 해체하기로 했다. ‘음악적 만족도가 정점에 달했을 때 해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장기하는 “‘모노’를 만들수록 이번 음반이 최고다, 6집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렇다면 지금 해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MBC ‘무한도전’에서 ‘양평이 형’이라는 별명을 얻어 유명해진 하세가와 료헤이는 “가족끼리 함께 살다가 독립하는 정도”라며 의연해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로 산 10년은 멤버들에게 자랑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민기는 “우리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다른 팀이 없다는 점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웃었다.

다음달 29~31일에는 서울 연세로에 있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마지막 콘서트 ‘마무리: 별 일 없이 산다’를 연다. 이에 앞서 오는 3일까지는 서울 연희로 모텔룸에서 소극장 콘서트로 팬들을 만난다. 멤버들 모두 활동을 준비하느라 해체에 대한 감상에 젖어있을 겨를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해체 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단다. 장기하는 “해야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완전히 무(無)의 상태에서 내년을 시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

쿠키미디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