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풍등 하나에 불탄 저유소…외국인 노동자 탓할 수 있을까

풍등 하나에 불탄 저유소…외국인 노동자 탓할 수 있을까

266만ℓ 휘발유를 태우고 17시간여만에 진압된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고양저유소) 대형 화재.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부실 관리·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화재 원인은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입니다. 불씨는 외국인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었습니다. 고양 경찰서는 지난 8일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 국적 노동자 A씨(27)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고양저유소 인근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A씨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날아온 풍등 2개 중 1개에 불을 붙였습니다. 바람에 날아간 풍등은 저유소 잔디밭에 떨어졌습니다. 경찰은 불씨가 저유탱크 유증 환기구를 통해 탱크 내부로 옮겨붙으며 불이 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9일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화재 책임을 전적으로 A씨에게 돌릴 수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오히려 책임 전가라는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저유소는 수도권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국가 기간시설입니다. 자칫 경기 북부 일대 유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뻔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시설이 풍등 하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드러난 저유소 운영 주체 대한송유관공사의 문제점은 한두 개가 아닙니다.

먼저 고양저유소는 국가중요시설이 아닌 일반 건물이었습니다. 때문에 평소 출입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보안에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전국에 있는 저유소 중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된 것은 판교저유소(3억1300만)뿐입니다. 고양저유소는 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별다른 등급이 없었습니다.

또 대한송유관공사 방재시스템의 구멍이 드러냈습니다. 일단 휘발유 탱크 외부에는 화재 감지 센서가 없었습니다.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측은 저유소 탱크 내부에 불이 붙기 전 18분이나 화재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저유소 내부 온도가 80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무실에 알람이 울리도록 한 시스템은 있었지만, 외부 센서가 부재한 탓에 이번 사고가 커졌습니다.

소화 장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저장 탱크 주변에 있는 ‘포 소화설비’ 2개 중 1개는 고장이 났습니다. ‘인화방지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경찰은 유증기 환기구를 통해 불씨가 들어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증기 환기구에 설치된 인화방지망이 불씨를 꺼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화재를 예방할 수 있었던 설비 부재도 지적됐습니다. 고양저유소에는 유증기 회수 장치가 없었습니다. 유증기 회수 장치는 탱크 내에 있는 유증기를 다시 액체로 만들어 실외로 나가지 않게 하는 장치인데요.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유증기 제거 장치가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원들의 안이한 대처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화재 당일 고양저유소에는 당직자 2명 등 총 6명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치된 폐쇄회로(CC)TV 45대를 통해 저유소 주변과 유류 탱크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니터링 전담 인력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직원들의 당일 근무실태에 대해서도 추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양저유소 주변에 불에 타기 쉬운 잔디가 있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른 7개 저유소는 바닥이 아스팔트로 덮여 있습니다. 

전국에 대한송유관공사가 직접 운영하는 저유소 시설은 총 8곳입니다. 그런데 판교 저유소를 제외하고 남은 7곳은 모두 국가중요시설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불을 지를 수 있었다는 뜻이죠. 일각에서는 테러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이번 화재에 대해 3번이나 대국민사과문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철저한 진상조사, 그리고 재발 방지책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저유시설에 대한 전수조사와 안전관리실태 점검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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