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만난 백종원 레시피

구글에서 만난 백종원 레시피


문제는 간단하다. 한식의 이름을 한 가지 말하면 된다. 반찬이나 국도 좋고, 찌개나 특식도 상관없다. 단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첫 페이지에 일명 ‘백종원 레시피’가 뜨면 지는 것이 규칙이다.

이것은 최근 SNS에서 화제를 모은 ‘백종원 술게임’의 룰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방송에서 공개한 레시피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을 기반으로 탄생된 게임이다. 첫 페이지에 뜰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얘기도 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게임은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백종원 술게임’을 언급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에는 빠른 속도로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네티즌들이 음식 이름을 먼저 이야기하고 검색해본 후 결과를 적는 식이었다. 백종원 레시피의 방대한 양에 놀라는 것이 게임을 즐기는 포인트다. 댓글을 쭉 지켜보고 있으니 이런 식이면 ‘벌주를 마시다가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농담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었다.

무서웠다. 혹시 ‘백종원 술게임’의 필승법은 없을까. 먼저 지인들에게 게임의 룰을 알려주고 세 가지씩 답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곰곰이 생각하며 한 가지씩 답변해주기도 하고, 최근 먹어본 음식을 떠올리기도 했다. 바쁜 나머지 대충 세 가지 음식을 던져주는 지인도 있었다. 술이 눈앞에 있지 않은 가상 실험의 한계였다.

송화다식, 쑥국, 신선로, 묵사발, 토란국 등 생각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음식의 이름이 쏟아졌다. 생각보다 게임을 통과하는 답변이 많았다.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강경한 태도가 이런 곳에서 나타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유의미한 데이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백종원 레시피가 없는 음식들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이 있었다.

먼저 특정 식재료 이름이 들어간 음식이었다. 장어솥밥, 더덕구이, 미역줄기볶음, 도토리묵, 오징어순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식에 이용되는 음식의 재료가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그 조리법도 다양해서 경우의 수가 수없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백종원 레시피에 걸려든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베이컨 버섯 말이, 시래기국 등은 이미 백종원의 손을 거쳐 갔다.

다음은 특정 지역 이름이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유명한 음식이다. 전주비빔밥이나 대구막창, 벌교꼬막 등은 첫 페이지에 백종원 레시피가 없다. 그동안 백종원이 전국 어디에서나 유명한 음식들을 위주로 다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낙곱새, 낙지탕탕이처럼 레시피가 아닌 SBS ‘백종원의 3대천왕’ 관련 링크가 뜨면, 게임의 승패에 관한 불필요한 언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다. 탕평채, 신선로 같은 궁중음식이나 옻닭, 설렁탕, 야채죽, 간장게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생각해보면 이 음식들은 집이 아닌 전문 음식점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백종원 레시피의 대부분이 세 시즌을 방송한 tvN ‘집밥 백선생’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집에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구글에서 만난 백종원 레시피

직접 음식을 고민해보고 검색하면서 ‘백종원 술게임’에 내재된 의미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한식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식재료와 요리 방법, 지역 특색 등이 뒤섞여 수많은 음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식만 해도 이 정도인데 타 국가 음식까지 생각하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음식이 존재하는 걸까.

다른 한 가지는 백종원의 영향력이다. 백종원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2015년 방송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서다. 그가 출연한 방송과 레시피, 말은 많은 것을 바꿔놨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백종원 레시피를 참고하거나, 백종원이 맛집이라고 평가한 가게를 찾아가 보는 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게 접근하는 그의 콘텐츠가 방송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최근 백종원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 출연하고 있다. 동네에 유명하지 않은 식당을 찾아가 컨설팅을 하고, 세계 각지의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지역 음식을 맛보고 있다. ‘집밥 백선생’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가정식 레시피를 알려주고, 올리브 ‘한식대첩’과 SBS ‘3대천왕’에서 각 지역 유명 음식들을 맛본 것에 이어 이젠 골목과 해외로 진출했다.

이쯤 되면 그가 보여줄 콘텐츠가 얼마나 남았는지 예상하기 힘들다. 외식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자신이 제작한 만능 소스를 시판 중이기도 하다. 그가 출연하는 음식 방송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되고 있다. 어쩌면 백종원은 음식으로 현실과 인터넷 세계를 모두 지배할 계획이며, ‘백종원 술게임’은 커다란 힌트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면 지금 휴대전화를 열고 검색창에 음식 이름을 넣어보라. 겨우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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