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故 최은희의 삶… 영화인 배웅 속 영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故 최은희의 삶… 영화인 배웅 속 영면

[친절한 쿡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故 최은희의 삶… 영화인 배웅 속 영면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원로배우 최은희가 영화인들의 배웅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19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진행됐고, 신정균 감독을 비롯해 신성일, 신영균, 문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 영결식과 발인식에서 그녀의 영면을 지켜봤죠.

배우 최은희는 한국 영화계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삶을 살았습니다. 1926년 태어난 그녀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죠. 막 한국 영화가 태동하던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해 '성춘향' '지옥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한강' 등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죠. 관객이 늘어나고 영화가 대표적인 오락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민며느리’를 연출하며 여성 감독으로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힘썼죠. 제작자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 삶은 풍랑으로 가득했습니다.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한 그녀는 신 감독과 배우 오수미의 불륜 스캔들로 1977년 이혼했죠. 그 후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습니다. 남편이었던 신상옥 감독 또한 같은 해 7월 납북되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의 납북을 두고 자진 월북이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1984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가 두 사람의 납북을 ‘북한에 의한 강제 납북’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소문은 일단락됐습니다.

납북된 뒤에도 고인은 예술 활동에 힘썼습니다.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운 후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불가사리’ 등의 영화를 제작하며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눈에 띄는 활동을 펼쳤죠. 그러던 중 1986년 3월 영화 촬영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호텔에서 두 사람은 북한 공작원의 감시를 피해 미국 대사관에 은신을 요청해 극적으로 탈출했습니다.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동안 일본 교토통신의 섭외부장이 동행했으며 북한 공작원들도 탈출을 막기 위해 추격전을 펼치는 등 극적인 상황이었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고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정치·사회·문화 현실을 폭로했습니다. 북한에 있던 8년 동안 세 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이후 쭉 미국에 거주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습니다. 신상옥 감독은 2006년 4월 별세했죠.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92세. 빈소가 마련된 후 신성일, 김창숙, 고은아, 최난경, 윤일봉, 정혜선, 신영균, 문희, 오경아, 최지희, 최윤식, 한승헌, 태현실, 오정아, 임권택 감독, 이장호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고인의 죽음을 추도했습니다. 파란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예술혼만은 잃지 않았던 고인이 이제는 편안히 잠들기 바랍니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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