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외워야 하나” 공무원 한국사 문제에 노량진 학원가 ‘멘붕’

“이걸 외워야 하나” 공무원 한국사 문제에 노량진 학원가 ‘멘붕’#“공무원시험에서 서울 내 유적지 설립 연도를 묻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장충단, 대보단, 만동묘 등을 방문해서 안내 표지판을 살펴봐요.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놀러 가도 불안한 마음에 표지판을 유심히 보게 됐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죠”

7·9급 공무원 한국사 시험 문제에 대한 공무원시험준비생(공시생)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10일 오전 8시30분 공무원시험준비학원이 밀집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은 아침을 해결하는 청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중 다수는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거나 수험서를 손에 든 채 식사를 하는 공시생이었다. 

이날 만난 공시생 다수는 공무원시험 한국사 문제가 지엽적으로 출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2년차 공시생 윤모(30·여)씨는 “최근 한국사 문제는 ‘눈치 게임’ 같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오니 쏟은 시간이 아까웠다”며 “전문가나 강사들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임모(24·여)씨도 “한국사 문제가 풀 수 없는 수준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며 “세세히 공부하려고 해도 대비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걸 외워야 하나” 공무원 한국사 문제에 노량진 학원가 ‘멘붕’지난 7일 치러진 2018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한국사 시험에서 사건의 발생 연도를 묻는 문제는 20문항 중 6개다. 또 고려시대 진화의 시를 제시한 후, 진화와 교류한 인물의 저서를 찾으라는 문제도 출제됐다. 공시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내가 역사적 인물의 절친(절친한 친구)도 외워야 하느냐”는 성토가 일었다. 

지난달 진행된 서울시 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 한국사 문제도 논란이 됐다. ‘고려 후기 역사서를 시간순으로 옳게 배열한 것은?’이라는 물음과 함께 ‘본조편년강목’, ‘사략’, ‘고금록’, ‘제왕운기’가 보기로 제시됐다. 이 가운데 고금록은 지난 1284년, 제왕운기는 1287년 발행됐다. 발행연도의 차가 크지 않아 교수들도 쉽게 풀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씨는 동영상 해설 강의에서 해당 문항을 “XX 같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씨도 “한국사 교육을 왜곡하는 저질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걸 외워야 하나” 공무원 한국사 문제에 노량진 학원가 ‘멘붕’한국사 문제 예측이 어려워지자 일부 공시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공시생 3년 차인 김모(30·여)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내 문화유적지를 방문, 표지판을 살핀다. 그는 “1000쪽을 넘게 공부를 해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나오고는 한다”며 “시험에 나올까 불안한 마음에 유적지를 둘러본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공무원시험 준비에 뛰어든 김모(34)씨는 수험서에 나오는 사료의 내용을 ‘달달’ 외우려 노력한다. 단골 출제 사료인 삼국지위서동이전과 시무28조 등의 내용은 기본이다. 김(34)씨는 “사료의 대표 키워드를 거의 외우고 있다”면서 “다만 최근 지문이 너무 생소해서 문제를 보면 멍해질 때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엽적 문제가 많아지면 변별력이 없어진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공시생을 가르치는 학원 측도 향후 강의 방향을 고민 중이다. A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최근 한국사 공무원시험에서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틀리라고 내는 문제’를 출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사 강의의 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료 등 전달 내용이 늘어날 수는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시험 문제 출제는 인사혁신처(인사혁신처) 인재채용국 시험출제과에서 주관하고 있다. 공시생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 입장을 물었지만 혁신처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

쿠키미디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