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로그인] 중국과의 테이블에 게임 산업은 있나

[게임 로그인] 중국과의 테이블에 게임 산업은 있나

지난달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의 방한 이후 우리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롯데마트 현지 사업,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등 이른바 ‘3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대(對)중국 타격을 입은 지 두 해를 넘긴 데다, 중국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미세먼지 몸살까지 겹쳐 ‘우리 정부가 중국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이는 상황에서 극적인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 소식은 국내 유력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졌고 “이른 시일 내 가시적 성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중국 측의 태도에 화장품‧유통 등 관련 주가마저 들썩였다. 올해 한중환경협력센터 설립 등을 통한 공동 노력이 이뤄진다는 소식에 미세먼지 외교 대응에 대한 불만도 다소 잦아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국 진출길이 막혀 속앓이를 하고 있는 국내 게임 산업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양 위원의 발언에 따라 금융가에서 일부 국내 대형 게임사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긴 했지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지난해부터 국내 게임사들은 사실상 중국에 새로운 게임을 전혀 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현지에 게임 등 콘텐츠를 서비스하기 위해 요구되는 하는 ‘판호’가 지난해 3월 이후 한국 게임에 단 한 건도 발급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중국 미디어 총괄 부처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한국산 게임에 판호 발급 중단 구두 지침을 내렸다는 소식이 돌았고 중국을 가장 큰 해외 시장으로 보는 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역시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성 조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판호 발급 중단 이전인 2016년까지 국내 게임의 수출 비중은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이 37.6%로 일본 18.4%, 동남아 15.6%, 북미 11.4% 등을 압도한다. 국내 게임업계가 주력하는 모바일 게임 중심 시장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시장이다. 신규 수출길이 막히면 그만큼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이에 국내 게임들이 불완전한 상태로 중국에 수출되거나 IP(지식재산권) ‘역수입’ 현상마저 확산되고 있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는 그래픽 자원 등을 따로 팔아 중국 게임사에서 별개 게임으로 선보였고, 최근 모바일로 출시된 국산 PC게임 대작 ‘배틀그라운드’도 사실상 중국 텐센트 작품으로 알려졌다. ‘라그나로크M’, ‘드래곤네스트M’ 등은 중국에서 모바일화를 거쳐 국내에 역진출 했다.

반면 국내 시장에서의 중국산 게임은 규모와 질 양면에서 날로 성장하고 있다. 앱 분석 정보를 제공하는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출시된 중국산 모바일 게임 수는 139개로 전년 대비 약 19% 늘었으며 매출 20위권에 든 16개 게임의 연간 매출액도 74% 증가했다. 이 중 10위권 내에 든 게임의 매출은 292%나 급증했다.

이런 비대칭적 상황을 두고 국내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불공정 무역 상황”이라며 “개발력이나 속도 모두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이제 국내 운영 서비스까지 직접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게임 산업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이 같은 대외 환경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임은 이미 우리 콘텐츠 수출의 약 56% 비중을 차지한다. ‘한류’로 불리며 해외 수출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을 이끄는 음악‧영화‧드라마 등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게다가 인공지능(AI)‧가상현실(VR)‧증강현실(AR)‧블록체인 등 첨단 IT(정보화기술)와 밀접한 분야라는 점에서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산업이다.

이에 반해 국내 게임 업계는 타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덕분에 정치‧사회적 지원 배경이 약한 분야다.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 창업자들이 어지간한 국내 대기업 3세 경영자보다 나이가 적거나 비슷할 정도로 신생 업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은 중독, 사행성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IT·콘텐츠 업계 어느 쪽에서도 주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게임 분야를 맡은 기자 중에는 “네 자식도 게임 시키겠느냐”는 항의를 받았다는 예가 있을 정도다. 정계에서도 게임을 적극 옹호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 정부 출범 초기 게임 업계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었다. e스포츠 협회장을 지낸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웹젠 의장을 지낸 김병관 의원 등이 여당에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아들을 둔 만큼 부정적 인식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문 정부 2년차인 지금 전 전 정무수석은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돼 법정에 섰고 업계는 아직 긍정적인 분위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중국의 추격은 거세졌는데 높아졌던 기대감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여전한 부정적 인식, 중국 판호 문제, 국제사회에서의 게임 중독 질병 분류 시도 등 최근 업계에는 좋지 않은 소식만 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사면초가’ 상태의 게임 산업의 미래에 보다 관심이 필요할 때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정부가 보여준 단호한 태도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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