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민주화”… 미투, 대학가 변화 이끈다

“일상의 민주화”… 미투, 대학가 변화 이끈다

학생회, 성폭력 제보 직접 받고 공론화

연대 성명 통해 ‘안전한 학생사회’ 선언

“미투 강의 수강신청 2배”… 토론 후 문화행동 실천도

“민주화되지 않은 영역에 대한 민주화”

‘미투’(#Me Too) 바람이 대학가의 변화를 몰고 있다. 만연한 위계구조를 허물어 성폭력 등으로부터 안전한 대학 사회를 만들자는 ‘학생 주도’ 운동이 곳곳에서 일고, 구성원 간 자정의 목소리도 강조된다. 학과나 동아리에서 미투 관련 토론과 강좌가 큰 관심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동등한 인격을 인정하고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개강과 함께 학생들은 성폭력 근절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운동의 중심에 섰다. 더 이상 당하거나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제자를 성폭행하고 노예처럼 부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태훈 교수가 자진 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른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학생회는 ‘성폭력 피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제보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공론화를 거쳐 가해자 사과를 요구하기로 했다.

동국대 총여학생회는 익명 커뮤니티인 ‘대나무숲’을 추가로 만들어 미투 운동에 활용하기로 했고, 이화여대 학생신문인 이대학보는 성차별 경험을 담은 수기를 받아 보도했다.

연대 성명도 이어졌다.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중앙대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 등은 지난 2일 “성평등 대학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6일에는 대학생 단체 96개·개인 1,087명이 “학생 스스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생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투가 휘몰아친 가운데, 신입생 행사나 모임 등으로 분주하고 들떴던 과거와 달리 올해 대학가의 3월은 다소 차분하고 절제하는 분위기로 시작됐다. 자치기구를 중심으로 술을 강요하거나 신체를 접촉하는 게임, 외모에 대한 비유 또는 성적 농담 등을 삼가달라는 구체적 권고가 잇따랐고, 이를 지키려는 학생들의 노력도 눈에 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인 안 모(19·서울)씨는 “분위기가 예년만큼 떠들썩하지 않다는 선배 얘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학생 스스로 자정하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모님도 최근 달라지고 있는 학내 문화를 전해 듣고 걱정을 더신 듯 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학과장은 “교수들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이 계속 불거지면서 사후조치가 미흡했던 대학 사회에 대한 실망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면서 “나 또한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언행을 했는지 돌아보고, 동료 교수들에게 ‘자기 검열’을 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수강 신청 과정에서는 최근 미투 바람을 타고 화두가 된 인권, 성평등, 페미니즘 등과 관련된 강의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여성과 사회’의 경우 시간대를 달리 해 한 학기에 두 개 강의를 진행하는데, 지난 학기 총 52명이 수강했던 것에 비해 이번 학기에는 139명으로 수강 인원이 2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관련 토론에도 적극적이다. 군 제대 후 복학한 대학생 박 모(22·서울)씨는 “휴학 전 선후배 문화가 수직적이었다면 현재는 수평적 관계로 나아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학과나 동아리에서는 미투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며 “토론은 다시 건강한 문화를 만들자는 다짐과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에 호소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대학 내에서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설 교수는 “미투 운동이 일으킨 대학의 변화는 만연했던 권력 구조로 인한 성폭력 등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화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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