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편, 스스로 계구 채운 의료계


의료계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주춧돌을 세우는 일을 정부와 한동안 함께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책 결정과 추진에 부담을 안게 됐다. 국민들의 의료보장성 강화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돼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지난 10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2가지 안건에 대해 심의했다. 첫 안건인 ‘추무진 의협회장 불신임(탄핵)’은 두 번째 안건의 심의·의결이 마무리될 때까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에 따라 추 회장과 집행부는 2달여 남은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탄핵안 상정에 앞서 논의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 관련 보고와 의협 내 입장정리에 대한 의결결과, 추무진 집행부는 더 이상 정부 등과의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게 됐다.

의결권을 가진 232명의 대의원 중 120명이 집행부의 지속적인 협상을 반대했다. 전달체계 개편은 의료계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문제인 만큼 충분한 논의와 의견조율이 반드시 선행돼야하기에 졸속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스스로 계구 채운 의료계
그 때문인지 대의원들은 반대의결에 더해 확답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추 회장은 “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한 것은 쓰러져가는 일차의료,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한 충심이었지만 대의원회에서 결정된 만큼 39대 집행부에서는 더 이상 전달체계 개편 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일명 문재인 케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방식이 달라져야한다. 의료기관들도 역량과 시설, 기능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

전문가들은 현 체계를 유지하며 보장성강화가 이뤄질 경우 수년 내 건강보험 재정은 파탄나고, 건강보험료 폭탄이 떨어져 국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심지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뒷걸음질 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 윤 교수가 중심이 된 전문가들은 보장성강화 정책과 함께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추진돼야한다고 봤다. 의원-병원-종합병원이 주어진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고,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체계를 확립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날 의협 대의원회의 결정과 추 회장의 논의거부 선언으로 인해 추 회장의 임기기간인 2달여간 전달체계 논의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진행될 수 없게 됐다. 더 이상 진료과목별 혹은 직능별 의견을 종합하고, 모아진 의견을 정부에 전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대의원은 “(전달체계에 대한) 의협 집행부의 행동이 중지된 것뿐”이라며 “진료과나 관련 단체들 간의 의견수렴이 이뤄질 경우 차기 집행부에서 이를 취합해 병원협회와 논의한 후 정부에 이를 전달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있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임시대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전해들은 후 “전달체계 개편이 하루 이틀 언급된 사안도 아닐뿐더러 의견조회를 할 때는 뒷짐 지고 있다가 임박해서야 반대라고 나서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대의원들 스스로 의료계의 손발을 묶은 격”이라며 “대책은 없이 막기만 했다. 물론 정부 홀로 관련 사안을 결정하거나 추진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형태로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든 의료계가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잃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또 다른 대의원은 “전달체계 개편의 핵심은 수도권으로의 환자집중현상과 경증환자의 대학병원 집중이라는 2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집행부는 세세한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핵심을 잊었다. 앞으로라도 핵심과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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