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국정농단’ 의혹에 침묵한 자와 반성한 자

‘국정농단’ 의혹에 침묵한 자와 반성한자

“잘 알지 못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변입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 등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국정농단 연루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청문회 출석 자체를 거부한 이들도 다수였습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비서관들과 행정관이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죠.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기소된 9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10일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윤 전 행정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별다른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았다”며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소망을 져버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나쁜 전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재판부의 의지 표명으로 분석됩니다. 윤 전 행정관은 이날 법정을 나서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의 비위 의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인지,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는 모습을 감췄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는 출석했으나 자신이 수행했던 업무와 최씨가 운영했던 의상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잘 알지 못한다”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이에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헌재) 소장은 “명백히 형사책임을 져야 할 발언 외에는 증언할 의무가 있다”며 “대통령의 개인적 영역이라도 증언을 거부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라고 질타했죠. 

[친절한 쿡기자] ‘국정농단’ 의혹에 침묵한 자와 반성한 자국정농단에 연루됐으나 윤 전 행정관과는 다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습니다. K스포츠재단의 일부 임직원들은 박근혜 정부와 최씨가 대기업을 압박해 재단 기금을 마련했다는 사실 등을 폭로했습니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그의 가족들은 언론에 재단 관련 비리를 처음으로 제보했습니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또한 청문회 증언과 각종 자료를 통해 국정농단의 전모를 밝히는 것에 일조했죠. 이들의 내부고발이 도화선이 돼 이화여자대학교 학사농단, 의료농단,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를 수 있었습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지난달 정 전 사무총장과 그 가족에게 국정농단을 알린 공로로 의인상을 수여했습니다. 노 전 부장과 박 전 과장 또한 각각 투명성기구의 투명사회상과 호루라기재단의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습니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사실이 있으나 반성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 공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재판정과 수상대. 국정농단에 연루됐다는 ‘시작’은 같았지만 이들이 현재 서 있는 자리는 판이합니다. 윤 전 행정관이 침묵하지 않았다면 재판정이 아닌 수상대에 섰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이 침묵이 아닌 반성의 목소리입니다. 혹여 이야기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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