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찌민_인터뷰] 베트남 사로잡은 3인의 한국 예술가

흔히 예술은 국가와 인종, 언어의 장벽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소통케 하는 힘을 가졌다고들 말한다.

한국과 베트남 예술인들의 상호교류와 화합을 위한 ‘한-베 미술교류전’이 ‘호찌민-경주엑스포’기간(11.11~12.3) 동안 베트남 호찌민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양국 대표 예술가들의 참여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예술작품으로 전 세계에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는 3인의 국보급 예술가를 만나본다.  

 

◆ 빛을 뜨는 혼자수 이용주 작가
혼(魂)이 깃든 손으로 뜬 자수 작품에 전 세계가 매료됐다. 이용주(61) 작가의 혼자수 작품 앞에 서면 누구나 낯선 생동감이 주는 황홀경에 빠져든다.

특히 혼자수 초상화의 우수성은 이미 입증됐다. 2008년 서울시의 의뢰로 서울국제경제자문단총회에 참석한 국빈급들의 초상화 20여점을 제작했고, 그해 3월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을 부른 가수 셀린 디온의 내한공연이 있었는데, 이 작가는 그의 초상화도 제작했다.

자신의 가족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을 본 셀린 디온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일과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혼자수 초상화에 대한 주문이 이어졌다. 외국 대사가 자국의 대통령 초상화를, 조계종 진제 종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상작품을 요청했다.

현재 국내외 정재계 인사를 비롯해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요르단 국왕, 알제리 대통령, 러시아와 그리스 정교회 대주교, 영화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 가수 나나 무스쿠리,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 멤버 등 유명 인사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4년에는 터키 이스탄불시의 요청으로 이스탄불의 문화유산을 담은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완벽하게 설계된 밑그림(본)을 토대로 비단실을 염색한 후 그 실을 바늘에 꿰어 점·선·면의 입체적인 수를 놓는다. 멀리서 보면 사진이나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형형색색 실과 바늘로 수놓은 자수 작품인 것을 알 수 있다. 

걸어가면서 그의 작품을 보면 더욱 놀랍다. 안색과 얼굴의 주름, 머리카락의 색과 결,  옷의 질감, 심지어 수염 한 올 한 올의 윤기까지도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미세하게 변한다.

실내라면 조명, 실외라면 햇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바늘의 기울기와 실의 굵기를 조절해 일종의 ‘홀로그램 효과’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2차원인 사진이나 그림을 3차원으로 ‘되살린’ 것이다. 그래서 일까. 혼자수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만지면 마치 ‘도플갱어’를 보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고도 한다.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는 혼자수로 재탄생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이 작가에게 “당신이 모든 사진의 차원을 달리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이 작가는 4개의 작품을 새로 만들었다. 1개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린다. 그는 “아트디렉터로서 모든 과정을 총괄하며 문하생들의 도움을 받아 동시에 작업이 진행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밑그림을 그리거나 느슨하게 혹은 두껍게 꼬아 실의 굵기를 조절하고 염색하는 일, 또 자수 기법을 정하는 등의 중요한 일은 그의 몫이다. 

새로운 작품에는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 등 모두 베트남과 호찌민을 상징하는 인물을 담았다. 이 작가는 “베트남 국민들과 호찌민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그들이 추앙하는 인물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호찌민의 청년시절과 말년의 모습을 담은 두 작품은 전시장에 나란히 걸려있다. 호찌민은 그 누구보다 베트남인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되살아온 호찌민’을 보기 위한 현지인들로 전시장은 연일 붐비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전시장을 방문한 레 탄 리엠 부시장은 안경까지 벗으면서 그의 작품을 집중해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김관용 도지사가 “호찌민의 젊은 시절과 부시장이 닮은 것 같다”고 덕담을 하자 부시장은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 작가는 “호찌민은 단순한 베트남인이 아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면서 혁명가였고, 남북통일을 이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트남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민족의 영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팝가수 셀린 디온을 울린 남자, 우리의 전통자수를 예술로 승화시켜 ‘혼자수’라는 영역을 개척한 이용주 작가. 그의 혼이 담긴 작품이 이번엔 베트남을 감동에 젖게 한다.  

 

◆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
지난 11일 김관용 도지사와 함께 시립미술관을 방문한 레 탄 리엠 호찌민시 부시장과 호찌민 측 관계자들은 한 작품 앞에 홀린 듯 멈춰 섰다. 이들은 탄성을 자아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품의 이름은 ‘불국설경’, 작가는 수묵화의 대가 소산(小山) 박대성(72) 화백이다.

특히 레 탄 리엠 부시장은 작품이 풍기는 압도적인 위용에 감탄하면서 통역사를 통해 박 화백에게 “이 작품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이냐”며 재차 확인했고, 작품의 배경과 실제크기, 작업기간 등을 세세하게 물었다.

가로 13m, 세로 3m에 달하는 이 작품은 눈 내린 불국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담아낸 대작이다. “불국사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준비했다. 흰 눈에 쌓여 빛나는 경주 불국사의 겨울밤을 먹으로 그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더욱 놀라워했다. 

박 화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붓글씨로 키운 필력을 바탕으로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화의 실경산수를 독보적인 화풍으로 발전시켰다. 소재나 기법에 있어 전통을 추구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받아들여 작품에 적절하게 입힌다.

단지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기에 한국인은 물론, 한국의 전통 수묵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박 화백의 작품 앞에서면 진한 묵향에 넋을 빼앗긴다.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다.

 

박 화백은 그림을 시작한지 50년이 넘었다. 먹 향기와 더불어 살아온 반세기가 그의 철학과 작품의 지난 깊이를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실제 겸재 정선의 대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박 화백은 1999년 이후 경북 경주에 정착한 이후 남산자락에 화실을 두고 전통 수묵화의 현대화에 매진하고 있으며, 경주의 역사와 문화유산, 풍광을 화폭에 담고 있다.

또 지역 예술발전을 위해 830점의 작품을 경북도와 경주시에 기증했고, 2015년 그의 기증작을 중심으로 경주엑스포 공원 내에 솔거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지난해 박 화백의 화업 50주년을 맞아 그와 긴 시간 동행했던 지인들이 풀어놓는 박 화백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출간됐다. 이 책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소산은 그의 작업실을 불편당(不便堂)이라 붙였을 만큼 ‘불편’을 선호한다. 쾌적하고 유복한 환경에서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원리를 몸소 실천했다”고 쓰기도 했다.  

박 화백의 붓질은 진중하면서도 대담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다. 또 여유롭지만 노련하고 치밀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한국 수묵화의 정수’라고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베 미술교류전’을 찾는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큰 울림에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국적, 성별, 나이도 불문이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김해자 누비장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한·미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 해외순방 기간에 입었던 분홍색과 하늘색의 아름다운 누비옷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천연염색과 꼼꼼한 손바느질, 감각적인 디자인의 누비옷은 당시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김 여사는 미국에서 입었던 분홍색 누비옷을 전 주한미국대사 부인에게 즉석에서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누비옷을 만든 인물이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기능보유자 김해자(64) 누비장이다. 그는 경북 경주시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과 제자양성에 힘쓰고 있다. 

누비는 보통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바느질을 해서 꿰매어 붙이는 겨울옷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름에는 솜을 넣지 않고 만들어 사계절 아름답게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 복식이다.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도 여름용 ‘평누비’였다. 누비는 바느질의 간격, 형태, 재봉법 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며 바느질의 단순함과 규칙, 정성과 노력, 느린 시간을 오롯하게 이겨내야만 완성되는 한국 복식문화의 정수다.

일본,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다수의 작품전을 개최한 김 누비장은 2000년 이후 경주에 정착한 이래 여러 차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참여하며 한국전통 복식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에게 알렸다. 2013년 터키에서 열린 ‘이스탄불-경주엑스포’에서도 전시했다. 

특히 이번 ‘호찌민-경주엑스포’에서도 ‘한-베 미술교류전’을 통해 베트남인들과 세계인들에게 한국전통 복식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는 호찌민_인터뷰] 베트남 사로잡은 3인의 한국 예술가

 

김 누비장은 “호찌민 전시에서는 베트남의 날씨에 맞는 여름용 평누비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겨울용 솜누비, 춘추용 평누비, 어린이 복식, 어른 외투 등 다양한 누비작품들을 준비했다”며 “우리 전통 옷 뿐 아니라 평소에 입을 수 있는 양장작품들도 선보인다”고 말했다. 

또 “일반적인 옷들처럼 깃이 맞물리는 것이 아니라 깃이 서로 마주보며 각진 형태의 ‘방령깃’을 적용한 코트 등을 통해 실용적이면서도 우리 복식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옷을 전시한다”며 “베트남인들이 손재주가 뛰어나고 바느질 솜씨도 좋다고 들었기에 베트남인들을 만나는 것이 더욱 기대된다”며 ‘호찌민-경주엑스포’ 참여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그동안 다양한 해외 전시를 진행해 온 김 누비장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들은 누비옷을 보자마자 바로 탄성을 터트린다”며 “외국인들은 누비옷의 디자인과 색감에 한번 반하고 옷에 들어간 공과 성실성을 듣고 두 번 감동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의 전시도 의미 있지만 외국 전시는 한국전통 복식문화의 정신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뜻 깊다는 김 누비장.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로 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 옷이지만 금세 싫증을 내고 새로운 옷을 사며 욕망을 좇아간다”며 “평생 입어도 싫증나지 않는 옷, 검소하고 단아하고 정숙한 옷을 통해 한국 전통 복식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옷은 입는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인데, 현대의 옷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고 화려한 것에 치중해 있다”며 “정성과 노력, 인내라는 정신을 오롯이 담은 옷을 통해 복식의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고 옷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했다.

빠르게 생산된 화려한 옷이 아닌 한 땀 한 땀 누비질을 통해 탄생한 한국의 정신을 담은 옷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김 누비장.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내놓는 이번 작품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호찌민=김희정 기자 shi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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