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뚱뚱한 여자 놀리는 것 재미있다"는 '처녀비행' 감독의 의도

"뚱뚱한 여자 놀리는 것 재미있다"는 '처녀비행' 감독의 의도

[친절한 쿡기자]
누군가가 자신의 외모를 지적하며 희화화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것을 잊고 그저 재미라고, 혹은 장난이라고 말하며 즐기는 이들이 있죠. 남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이가 당당하게 남을 놀리는 것을 단순히 재미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지난 21일 영화 ‘처녀비행’의 한승주 감독은 “저는 뚱뚱한 여자를 놀리는 것이 사실은 재미있는 그냥 보통 한국 남자”라고 말했고, 문제가 됐습니다. 이 말이 나온 맥락은 간단합니다. 제 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처녀비행’을 본 관객의 반응 때문입니다. 지난 20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녀비행’을 본 관객 A씨는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희화화를 지적했습니다. 주인공 가희(김가희)는 뚱뚱한 몸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 좋아하는 남자에게도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을 삭히는 캐릭터입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날씬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에 다이어트 약을 삼키죠. A씨는 영화 속에서 나온 외모지상주의적 관점이 불편하다고 의견을 피력했고, 몇몇 관객의 동조가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한승주 감독이 직접 SNS 계정을 생성해 A씨에게 전한 입장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승주 감독은 “(사회적)문제를 제기하려 만든 작품은 아니다. 영화를 만든 저는 뚱뚱한 여자를 놀리는 것이 사실은 재미있는 그냥 보통 한국 남자다”라며 “꾸준히 반성할 거고, 어쨌든 봐주셔서 고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앞으로도 (A)님 같이 딱히 사려 깊지 않은 관객들까지 배려할 마음으로 영화를 조심스럽게 만들 생각은 없다”고 말한 한승주 감독은 “그러니 언제라도 제 다른 영화를 보시거든 계속 미워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감독은 앞선 작품 소개 인터뷰에서는 “타인의 의식이나 영향을 받지 않은 꾸며지지 않은 몸 자체가 아름답다”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죠. 자신이 한 인터뷰와 대치되는 의견을 밝힌 것도 관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테지만, 스스로가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 것은 더욱 놀랄 일입니다. 자신이 만든 영화 자체가 뚱뚱한 사람을 놀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읽히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계정이 한 감독의 사칭 계정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으나 해당 계정의 메일 주소가 한 감독의 배우 공고 메일과 일치해 한승주 감독 본인임을 의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관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겠다는 발언과 SNS 설전도 관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노릇입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불특정다수에게 상영되는 만큼, 제작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예술 장르입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일부 관객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자세와, 관객의 주관적 평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겹쳐져 반감을 일으켰죠. 몇몇 관객들은 “여성혐오적 관점으로도 읽힌다”고 의견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전이 계속되자 한 감독은 결국 “영화 속에서 죽은 게도 암놈이었다. 의도했다”며 “이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기 싫다”고 말한 뒤 계정을 삭제했죠. 제대로 된 답변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기 충분한 상황.

결국 관객들은 부산국제영화제 SNS로 영화 초청 의도를 물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1일 폐막했으니 빠른 답변이 어려울 만도 합니다. 이에 관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만듦새가 좋았다"라며 "'처녀비행'이라는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좋았기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한승주 감독의 설전을 인지하고 있음을 밝히며 "관객들과 의견을 나누던 도중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도로 영화제에 ‘처녀비행’을 초청했든, 한승주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의도와 걸맞은 답변을 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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