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빅토리아&압둘'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은 우정, 간극 메우는 유쾌함

'빅토리아&압둘'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은 우정, 간극 메우는 유쾌함

[쿡리뷰] '빅토리아&압둘'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은 우정, 간극 메우는 유쾌함수많은 역사서들은 통치자의 고독함을 논하기 마련이다. 정치의 무게 때문에 혈혈단신으로 평생을 고독히 보낸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역사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사서가 사실 잘못됐다면?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인간적 면모가 감춰졌다면?

영화 ‘빅토리아 & 압둘’(감독 스티븐 프리어즈)은 영국의 위대한 빅토리아 여왕이 81세에 사귄 친구 압둘의 이야기를 그린다. 1900년대초 수많은 식민지를 포함한 대영제국의 여왕이던 빅토리아 여왕은 인도에서 온 압둘 카림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 인간적 애정을 가진다. 당시 영국인들은 피부색이 검은 인도인과 여왕이 친하게 지냈다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아했고, 여왕 사후 압둘 카림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으나 2010년 발견된 압둘의 일기장을 토대로 이야기가 알려졌고, 영화 또한 만들어졌다.

영화는 나라를 통치하기엔 너무 지친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식을 열 명 넘게 낳았지만 마땅히 제위를 물려줄 만한 이가 없는 여왕은 누군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쳐 있다. 수많은 귀족들과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서도 졸기 일쑤고, 항상 짜증이 나 있는 여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인도에서 온 압둘 카림. 인도의 선물을 전달하러 온 그는 영국 궁정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신선한 행동으로 여왕의 흥미를 돋운다.

이국적인 외모도 한몫해, 여왕은 압둘을 옆에 두고 인도에 관해 묻기 시작한다. 압둘은 자신이 꾸란을 모두 외우고 있다며 꾸란의 가르침을 여왕에게 전파하고, 인도의 말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여왕은 자신이 깔봤던 인도에도 고도로 발전한 문화가 있음을 인지하고, 압둘을 자신의 스승으로 만든다. 하인 신분으로 인도에서 건너온 압둘이 여왕의 스승이 되자, 영국 궁정 내에서는 본격적으로 반발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영화 ‘빅토리아 & 압둘’은 유쾌한 분위기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압둘과 여왕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간극과, 그 간극 사이를 메우는 유머들은 관객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기 충분하다. 영화 속 사람들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꽉 막힌 사고방식들은 지금도 종종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풍자와 유머 사이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웃음을 안긴다.

다만 영화가 철저하게 지배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은 큰 흠이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여왕에게, 역사를 왜곡해가면서까지 여왕의 비위를 맞추는 압둘의 모습은 인도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시대적 차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씁쓸하다.

빅토리아 여왕 역을 맡은 배우 주디 덴치의 연기는 오만하고 꽉 막힌 여왕을 이해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오는 25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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