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얼굴’ 권오현 부회장, 쓴소리 남기고 떠나는 까닭은

‘삼성의 얼굴’ 권오현 부회장, 쓴소리 남기고 떠나는 까닭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는 실적 고공행진 가운데 리더십 교체라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13일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 “최고인 지금 새로운 도전 필요해” 
 
이날 권 부회장은 사내 게시물을 통해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날 권 부회장의 사퇴 발표에 앞서 삼성전자는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의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반도체 등의 시장 호조에 힘입어 호실적을 기록한 전분기보다도 개선된 실적으로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권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이어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며 새로운 리더십과 분위기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권 부회장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이 때가 가장 변화가 필요한 시기고 뒤를 이을 후임 경영진의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스스로 대표이사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조만간 이재용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결심을 전하고 이해를 구할 예정이며 후임자를 추천할 계획이다.

◇ 반도체부터 살림까지 맡아온 삼성전자의 ‘얼굴’

권 부회장은 이날 “삼성에 몸담아 온 지난 32년 연구원으로 또 경영의 일선에서 우리 반도체가 세계 일등으로 성장해 온 과정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사장과 반도체 사업부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은 권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지금의 삼성전자를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권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공학도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성장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경영 계획과 방향을 설명하는 역할도 도맡아 왔다. 

특히 대표이사직을 맡은 이듬해인 2013년부터는 매년 초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내 경영 현안을 직접 설명해 왔다.

세계 시장 경제가 불확실성의 위기에 있던 2015년 권 부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수익 창출과 B2B(기업 간 거래) 사업 육성 전략을 밝혔고, 지난해에는 공유경제 등 새로운 사업모델로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에서 사물인터넷(IoT) 사업 등을 앞세운 ‘퍼스트 무버’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 등으로 위기를 겪은 것과 관련해 관습적 시스템과 업무 방식을 점검해 철저한 위기관리 체계를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배터리 품질관리 체계 등을 개선한 삼성전자는 올해 스마트폰 사업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안팎으로 삼성전자 살림을 챙긴 권 부회장의 퇴진이 2013년부터 ‘3인 대표 체제’로 삼성전자를 함께 이끌어 온 윤부근, 신종균 사장 등의 세대교체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두 사장은 현재 반도체와 다른 주요 사업 축인 CE(소비자가전), IM(모바일) 부문장을 맡고 있다.

한편, 권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저의 충정을 깊이 헤아려 주시고 변함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고 당부하며 불필요한 동요가 없기를 바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

쿠키미디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