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면목 없다”는 양효진, 그리고 배구협회

[옐로카드] “면목 없다”는 양효진, 그리고 배구협회[옐로카드] [레드카드]는 최근 화제가 된 스포츠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되짚어보는 쿠키뉴스 스포츠팀의 브랜드 코너입니다.

[쿠키뉴스=문대찬 기자] 42일 동안 5개국에서 무려 19경기를 치른 강행군이 끝났다. 살인적은 스케쥴 속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은 씁쓸한 상처만 안은 채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한국은 1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19회 AVC 아시아 여자배구선수권대회’ 3·4위전에서 중국을 세트 스코어 3-0(25-11, 25-11, 25-18, 25-20)로 꺾고 대회 3위를 기록했다.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대회 내내 불거진 혹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올 여름 혹사에 가까울 정도의 강행군을 펼쳤다. 지난 5월 말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전을 시작으로 FIVB 월드그랑프리, AVC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잇달아 출전했다. 불가리아와 폴란드, 대한민국 수원을 거쳐 체코, 그리고 진천선수촌에 돌아온 뒤 다시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체력은 바닥을 쳤다. 심지어 14명의 엔트리 가운데 12명만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했다. 자연스레 특정 선수와 주전 선수들에 과부화가 걸렸다.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김연경도 눈에 띄게 지쳤다. 

결국 사단이 났다. 미들블로커(센터) 양효진이 지난 14일 카자흐스탄과의 8강 플레이오프 경기 도중 허리 통증으로 쓰러졌다. 양효진은 16일 치료를 위해 조기 귀국했다. 

부족한 전력에 또 다시 누수가 생기자 대표팀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4강에서 만난 태국에 충격적인 셧아웃 패배를 당하며 결승진출이 무산됐다.

이에 대해 양효진은 “성적을 떠나 대표팀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다들 힘이 들 텐데 대표팀 선·후배 그리고 코칭스태프에게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작 “면목 없다”고 말해야 될 쪽은 양효진이 아니라 배구협회다. 

배구협회는 강행군 내내 잡음을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이코노미석 논란이다. 그랑프리 준결승을 위해 체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몇몇 선수들이 항공기 이코노미석에 배정되는 웃지 못 할 광경이 펼쳐졌다. 배구협회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키 185cm 이상의 선수 다섯 명과 무릎 수술을 받은 선수는 비즈니스석에, 나머지 선수는 이코노미 석에 앉히는 결정을 내렸다. IBK 기업은행이 지원금을 건네 급한 불은 껐지만 배구협회의 운영은 도마 위에 올랐다.

주먹구구식 운영과 기준이 불분명한 대표팀 선발도 비판을 불러왔다. 참다못해 폭발한 김연경이 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한다. 이번 대회에는 이재영이 들어왔어야 했다”며 날을 세웠다. 표면적으론 이재영을 향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면에는 협회를 향한 불만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협회는 지난 2008년 부상 등으로 대표팀 소집에 불응한 김연경을 비롯한 선수들에 징계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재활 등을 이유로 대표팀 차출에 불응한 이재영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협회의 기준과 운영이 의뭉스러운 이유다.

마땅한 지원은 없으면서 선수들에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일본과 태국 등은 협회의 꾸준한 투자와 운영 속에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특히 일본은 ‘프로젝트 코어’라는 남녀배구 유망주 훈련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미래의 옥석을 가려내는 중이다. 실제로 올해 일본 남녀 시니어대표팀에 속한 절반 이상의 선수가 프로젝트 코어를 통해 훈련 받았다.

2020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배구협회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그저 눈앞에 놓인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해 선수들을 혹사로 내몰고 있다. 배구협회가 혹사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김연경에 9월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그랜드 챔피언스컵 출전 의사를 물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배구협회는 건물 매입 등으로 홍역을 앓은 뒤 10년 가까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당장 대표 선수들의 수당, 항공기 비용 등을 감당하기도 힘든 협회에 힘이 있을 리 없다. 어찌보면 선수 차출을 두고 프로구단과 마찰을 빚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협회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머리를 맞대고 향후 방향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손을 잡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사례처럼 국제대회를 대비해 차출 선수들에 대한 혜택, 전임감독제, 보상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달 제6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에 취임한 조원태 총재는 "배구협회와 잘 협의해서 한국 배구가 국제 경쟁력을 키우도록 노력하고 국가대표 출전이 선수와 구단 모두에 이익이 되는 방법도 연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참패와 논란으로 인해 명분은 충분하다. 

더 이상 ‘혹사’가 ‘투혼’으로 둔갑해선 안 된다. 그만 역행을 멈추고 세계 배구의 흐름과 맞춰 나아가야 할 때다.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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