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의 덫… 법은 가볍고 그늘은 무겁다

대리수술 처벌 규정 없어… 대책 마련 시급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 유명 명품 브랜드와 백화점, 고급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 강남은 성형외과의 ‘메카’이기도 하다. 전체 성형외과의 75%가 강남에 밀집해있는만큼, 미(美)를 찾아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의 행렬은 멈출 줄 모른다. 해외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돈만 있으면 아름다워질 수 있는 미의 천국.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강남 성형외과에 유령이 배회한다. ‘유령수술’이란 이름의 사신은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비집고 들어와선 무고한 목숨을 거두어가고 있다.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쉽게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운 범죄.” 대리수술, 속칭 유령수술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최근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로 인한 환자 사망으로 문제가 불거졌지만, 대리수술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성형외과에 국한한 현상만도 아니었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대표변호사는 대형병원에서 대리수술이 빈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신 변호사는 설명한다.  

“최근 성형외과의 유령수술이 사회문제로 번지기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대형병원의 유명 교수들은 ‘특진 의사’로 돈은 챙기고, 치료는 아래 의사들에게 대신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수술집도는커녕, 해외학회에 참가해 있는 상태에서 특진비는 챙겼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은밀히 이뤄졌다.” 

대리수술은 의사-환자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데 있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유령수술(대리수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환자동의 없는 집도의사 바꿔치기는 의사면허증, 외부와 차단된 수술실, 전신마취약을 이용한 사상최악의 인륜범죄이자 의사면허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종사기. 의료행위를 가장한 살인·상해행위.”

왜 대리수술이 횡행하는 걸까? 다수의 의료분쟁사건을 다룬 신현호 변호사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병원이 보험급여로 수익을 얻기 어렵다보니, 비보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자연히 보험 급여 시장도 ‘인센티브제’로 바뀌었다. 수술을 많이 할수록, 환자 수에 따라 인센티브가 늘어나는 구조다. 지금도 대형병원 교수들의 급여 차이는 상당하다. 쉽게 말해 자동차 딜러가 차를 많이 팔면 수입이 느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물며 대형병원이 이런데 중소 규모 병원은 어떻겠는가. 인센티브를 늘리기 위한 꼼수가 늘어난다. 그게 유령수술이다.” 그는“한, 두 명의 일탈이라기 보단 구조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부 대학병원의 경우, 치과와 성형외과는 외부 임대를 주는 경우도 있다. 재건성형만으론 돈을 벌기 어려우니 너도나도 미용성형에 뛰어든다. 익명을 요구한 취재원에게서 서울 유명 프랜차이즈 성형외과의 급여체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의대 출신 의사는 초봉 1000만원, 연대의대는 700만원, 나머지 대학출신은 500만 원 선이라고 했다. 초봉은 달라도 환자 수에 따라 최종 급여는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환자를 더 빨리 보느냐에 따라 매월 가져가는 돈은 천양지차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병원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수익을 쫓게 되고 의료소비자를 ‘대충 때려막는’데 혈안이 된 셈이다. 

유령수술의 덫… 법은 가볍고 그늘은 무겁다

◇ 민사법원의 판결 그러나 형사법원은…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부장판사 임성철)은 원고 A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그랜드성형외과의 유모, 최모,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성형수술을 비성형외과 전문의에게 맡기는 등 유령수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수술 후유증을 호소하며 1억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고,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유령수술근절특임위원회의 김선웅 법제이사는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김 법제이사는, 그러나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형사소송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민·형사소송에서 동일한 자료를 법원과 검찰에 제출했지만, 검찰은(형사소송에서) 사기죄로만 피의자들을 기소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전에 국한된 사건으로 만들어버렸다. 증거자료로 제출한 근로계약서에는 피의자들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서 유령수술을 했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왜 검찰은 이처럼 중요한 증거자료를 배제했을까? 살인자를 잡을 증거를 줬지만, 검사들이 풀어준 꼴 아닌가.”

민사소송 1심의 판결이 유의미하다고 해서 소송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익명을 요구한 법학자의 견해를 들어보자. “형사사건의 증거자료는 민사소송의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 형사소송 결과가 민사소송에 무시 못 할 영향을 끼친다. (검찰의 기소와 관련해) 법원은 합리적인 이유설시 없이 증거자료를 배척하면 안 된다. 물론 형사법원의 증거 채택 차이는 존재하지만, 유력한 증거자료라면 채택해야 한다.” 

만약 피의자들이 형사법원에서 사기 혐의로 판결된다면 어떻게 될까? 해당 전문가는 “형법 347조1항에 따라 사기죄는 기본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그러나 죄질과 초범에 따라 처벌 수준은 변동적이다.” 반복하면 서울중앙지법의 이번 민사소송 판결에 안심하긴 이르다는 이야기다. 형사소송에서 피의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느냐에 따라 이들의 의사면허는 유지될 수도,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리수술의 근절은 요원한 걸까? 일단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현행 의료법에는 대리수술 처벌 조항이 없다. 관련 의료법 27조와 66조에는 대리수술에 대한 언급조차 없으며, 이는 시행령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의 대리수술 대책 역시 단속 실효가 높지 않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법이 헐거운 그물망을 펼치고 있는 사이, 유령수술의 피해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확실한’ 대책 마련의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에서는 형사 처분을 받은 의사에 대한 의료면허 취소를 추진 중이다. 의료윤리를 저버린 의사들에게 처벌의 수위를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마저도 뚜렷한 결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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