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스크린 독과점 논란, ‘군함도’는 잘못이 없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 ‘군함도’는 잘못이 없다

[소수의견] 스크린 독과점 논란, ‘군함도’는 잘못이 없다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영화 ‘군함도’는 지난 26일 개봉과 동시에 두 가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개봉 첫날 97만872명(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개봉일 최다 관객수 기록을 경신한 것이고, 또 하나는 2027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되며 2000개 스크린을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주인공이 되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상영관을 차지하는 현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다양한 영화를 볼 관객의 권리를 침해하고 영화 시장의 질서를 흐트러뜨린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예매율 70%에 육박할 정도로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배급사가 일부러 ‘군함도’에 상영관을 몰아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관객을 유치하기 위한 극장주 선택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격렬한 논란 속에서도 ‘군함도’는 개봉 이틀째인 지난 27일 기준 누적관객수 155만920명을 동원하며 순항하고 있다. 논란의 영향 때문인지 스크린수는 1961개로 개봉 첫날보다 66개 줄었다.


△ 다수의견 - 한국 극장가의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낸 ‘군함도’라는 괴물

상식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영화관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금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같은 영화 제목으로 도배된 극장 상영시간표를 보면 누구나 이상하다고 느낀다. 아무리 인기가 많고 재밌는 영화라 해도 마찬가지다. 해당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군함도’가 아닌 영화를 볼 기회를 박탈당했다. 현재 ‘슈퍼배드3’와 ‘덩케르크’가 상영 중이지만 보고 싶은 극장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보려면 많은 행운이 필요하다. 여러 상영관을 보유해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의미는 사라졌다.

배급사와 극장 측은 ‘군함도’의 예매율이 70%에 달한 것을 근거로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관객수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명량’의 개봉 첫날 스크린수는 1159개였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테랑’도 1064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것이 가장 많은 숫자였다. 앞선 영화들에서도 이미 많다고 느낀 관객과 영화인들이 ‘군함도’의 2027개 스크린을 보고 경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영화가 스크린을 너무 많이 장악하는 현상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만약 스크린 독과점의 결과로 천만 영화가 탄생한다면 영화계의 발전보다는 퇴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마치 관객들이 ‘군함도’ 같은 영화를 원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과 투자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흥행에 성공할 만한 스타 감독, 스타 배우, 흥행 코드, 대규모 제작비를 갖춘 영화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영화, 매력적이고 소소한 재미를 주는 영화는 세상에 빛을 볼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사실은 이미 수년 동안 있어온 일이다. 이것이 반복되는 것을 방치한 결과 지금의 ‘군함도’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한국 영화의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 소수의견 -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만들어낸 범인은 누구일까

‘군함도’는 억울하다. ‘군함도’가 지금처럼 높은 관심을 받고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이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오랜 기간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크린 뒤에 가려진 이들의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숫자만으로 영화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다.

‘군함도’가 지금처럼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되기를 의도한 것도 아니다. ‘군함도’를 극장에 배급한 건 CJ엔터테인먼트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되는지 여부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극장주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극장 관계자들은 직접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고 관객 예매율 등의 수치를 근거로 상영 계획을 세운다. 극장주들이 ‘군함도’를 많은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라고 판단한 결과 지금의 스크린수가 탄생된 것이다. 실제로 ‘군함도’는 역대 가장 많은 스크린에서 개봉됐음에도 52.8%의 높은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극장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영화의 스크린수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극장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매일 스크린수를 조정한다. 영화 ‘리얼’의 경우 개봉 첫날 97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하지만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혹평 받으며 낮은 좌석 점유율을 기록한 결과 일주일 만에 스크린수는 353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흥행하지 못할 영화에 스크린을 밀어줄 정도로 여유로운 극장은 많지 않다.

대기업이 영화의 배급과 극장 운영을 동시에 맡고 있어 자사 영화를 더 밀어준다는 ‘수직 계열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재 이를 규제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이 또한 미미한 수준이다. ‘군함도’의 경우에도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계열인 영화관 CGV의 스크린수가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 등 다른 극장보다 눈에 띄게 많다고 보기 어렵다.

한 편의 영화가 극장 전체 스크린의 일정 비율 이하에서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마련된다면, 현재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상영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화와 극장의 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잘못하면 개정안 때문에 관객수가 줄어들어 그 손해를 극장이 떠안을 확률이 높다. 그 결과 극장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으로 이어지면 그 피해는 다시 관객에게 전가된다. 단순히 강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스크린수를 조정하는 배급사, 극장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풀기 힘들다. ‘군함도’에게 잘못이 없는 건 물론이다. 그렇다면 결국 너무 많은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한국 특유의 영화 관람 문화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괴물을 만들어낸 빌미를 제공한 범인이 누구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 [소수의견] : 연예계 논란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모두 적어주는 쿠키뉴스의 코너. 소수의견은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 상황에선 무시되지만, 어느 시기에 가서는 다수의견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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