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올림픽 정신, 아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나

올림픽 정신, 아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나


[쿠키뉴스=문대찬 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 도쿄 올림픽 야구·소프트볼 경기 일부를 후쿠시마시에서 개최하겠다고 결정함에 따라 그 뒷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IOC는 지난 17일 평창에서 열린 이사회를 통해 후쿠시마 아즈마 구장에서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열겠다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 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IOC 바흐 위원장은 "쓰나미로 인해 고통 받는 지역에 올림픽 정신을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며 결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지역 관료들은 즉각 환영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후쿠시마현 우치보리 마사오 지사는 “부흥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IOC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흘러나왔습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은 “보이콧 해야한다” “선수들 보고 전부 죽으라는 것인가” “일본이 기권승으로 우승할 것이다” “IOC 결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9.0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지나간 이후, 후쿠시마는 죽음의 땅으로 불려왔습니다. 당시 가동 중이던 원자로 1~3호기의 전원이 멈췄고 이로 인해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 고농도의 오염수가 누출되는 등 토양과 해양오염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는 제1원자력 발전소 2호기에 ‘노심용융(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연료봉이 녹아내리거나 이로 인해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현상)’이 발생해 격납용기 바닥에 약 1m가량의 구멍이 뚫린 것으로 알려지며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여기에 격납용기 안의 핵연료가 지속적으로 용기를 녹이고 있어 방사선이 추가로 유출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입니다.

피해보고도 속속 이어졌습니다. 지난 2월 후쿠시마에 살던 18세 이하 37만 명과 사고 후 1년 이내에 태어난 아동 1만 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감상선 검사를 실시한 결과 116명이 암 확정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일본 전국 평균의 58배나 되는 발병률입니다. 

후쿠시마현 의료진은 갑상선암이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은 인정하나 이것이 방사능과 연관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최악이라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에도 4~5년 후에 아동의 갑상선암이 급증했습니다. 무작정 외면하기에는 후쿠시마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럿 징후들은 불안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방사능 위험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즈마 구장 선정 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도쿄 올림픽 경기장 후보로 거론된 후쿠시마현 3개 구장에 대해 “시설이 빈약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대부분이 흙으로 뒤덮인 아즈마 구장은 필드 내외야를 잔디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표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아즈마 구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와의 거리가 300㎞에 달합니다. 일정에 따라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당시 IOC도 아즈마 구장 건에 대한 결정을 보류했습니다. 

다소 의뭉스런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목적이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도쿄 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경제 침체 가속화를 극복하고, 대지진과 원전사고 재해 지역인 도호쿠 지방 재건 역시 일궈내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를 위시한 일본 정부는 그동안 후쿠시마 지역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습니다. 총리가 직접 나서 후쿠시마 산 해산물을 직접 시식했고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을 통해 연예계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원전사고 국가의 오명을 씻으려 노력했습니다. 피난 지시를 해제하며 후쿠시마를 떠난 지역 주민의 귀환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습니다. 사고 직후 피해 규모를 축소·은폐하려 했던 정부의 대응이 불신의 골을 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피난을 떠났다가 후쿠시마 지역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전체 피난민 중 7.9%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타 지역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주민은 12만3000명이나 됩니다.[친절한 쿡기자] 올림픽 정신, 아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나

설상가상 흉흉한 소문도 돌았습니다. 후쿠시마를 방문한 사카모토 류이치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투병 중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방사능 농도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 등으로 방사능 관련 문제를 은폐하려고만 들 뿐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후쿠시마 사태를 외면하고 터부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일본 인기 만화 ‘맛의 달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말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며 세태를 비판했다가 일본 정부의 전면적인 항의를 받았습니다. 특히 아베 총리는 “근거 없는 풍문에 나라가 직접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난 11일에는 후쿠시마현 추도사에서 ‘원전사고’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주민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정신은 국가적, 종교적, 인종적 차별 없이 전 세계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올림픽은 강대국간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경쟁과 결과 지상주의로 얼룩져 변질된 듯 보입니다. 곳곳에서 불거지는 오심 논란으로 올림픽에도 힘의 논리가 개입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 정신이 이용돼야 하는 걸까요. 아베 총리의 도쿄 올림픽이 부흥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혹은 흉흉한 괴담이 증식되는 결과를 낳을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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