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강제입원’ 금지 법 개정, 의사·환자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140여명의 국·공립 의사가 1년에 정신질환 입원 판정을 해야 하는 건수가 무려 23만 건에 달한다. 365일 24시간 의사들이 일을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건수다.”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오는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는 환자 인권 보호를 취지로 도입되는 강제 입원을 막고자 도입된 ‘2인 의사’ 진단 조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를 두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한 목소리로 정신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6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된 ‘개정 정신보건법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의 문제를 둘러싼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정신보건법 개정 핵심, ‘강제 입원 조항’ 2명 의사가 동의해야 가능= 오는 5월30일 시행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정신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이명수 의원, 최동익 의원 각각 대표발의)과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김춘진 의원 대표발의), 정부가 제출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등 4개 법안을 병합해 통과됐다. 지난해 5월 29일 공포된 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특히 이 법안에는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입원제도’ 절차 요건 강화와 입원적합성에 대한 외부 심사체계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기존에는 강제 입원을 위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입원 필요성이 있는 경우’ 또는 ‘자신의 건강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 중 1가지만 충족하면 됐다. 반면 개정법에서는 2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다. 

또 기존 법에서는 법적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결정으로 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될 법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소견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법안에서는 서로 다른 정신병원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필요하도록 했다. 최초 입원 후 치료입원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시켰고, 정신질환자의 입원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2주의 진단입원 기간을 두도록 했다.  

◆환자 인권 위해 ‘강제 입원 조항’ 개정, 의사 140여명 年23만 건 진단 “현실 불가능”= 이번 토론회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환자를 위한 강제입원 조항이 개정되며 도입된 ‘2인 진단’ 규정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는 “입원적합성 심사제도 기간은 1개월 안에 결과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심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병원의 의사들이 ‘입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요건인 2인 진단 규정이 권한 남용 등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건이사는 “의사들이 환자의 입원 여부가 의사 자신 또는 병원의 이익과 무관해야 객관적 판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남을 해칠 수 있는 중증 환자가 입원해야 한다는 요건 자체가 비전문가적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 ‘강제입원’ 금지 법 개정, 의사·환자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 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지게 되면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진료 거부’하는 대상으로 두게 될 우려가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아직 숙련이 필요한 공보의를 2인 진단 판정에 투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비상식 적’인 발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5월 시행은 이르다. 개정안을 보완하여 현실 적용 가능하게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의 인력부족 문제 등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개정안 시행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성혁 대한정신의학과봉직의협회 학술이사는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사로서 개정안은 현실에 적용 불가능한 측면이 다소 있다”며 “전국에 국공립 의사가 14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1년에 판정을 해야 하는 건수만 23만건이며 이를 1일로 따지면 900건에 육박한다. 이들이 모두 투입돼 입원 여부를 판정한다고 해도 365일 24시간 일을 해도 모자란 시간이다. 환자의 치료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별기준 업무를 이처럼 ‘떼우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국공립 의사로 인력수급의 한계를 느끼니까, 민간병원에 진단업무를 맡기자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민간병원’ 의사가 진단할 경우, 입원 심사 과정에서 사적 이익이 개입될 우려가 있다. 대가성 청탁이나 담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도 있다”며 “복지부가 진단 의사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위해 만들어진 개정안이 한발 진화가 아닌 5보 후퇴의 결과를 낳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법 시행은 현안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차전경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이 법의 추진의 가장 큰 이유는 정신질환자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논란이 된 강제입원 부분 조항은 시행규칙을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며 조만간 이와 관련한 전문의 의견들을 수렴해 입법예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방청객으로 참석한 환우들과, 환우가족들이 참석해 의견을 제시했다. 한 환우 가족은 “가족 중에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있으면, 그 가정은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 파탄 지경에 이른다”며 “정부가 정신질환 환자들을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법 개정에도 환우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법 적용 당사자들인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의견을 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환우는 “누구나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앓고 나서 나라에서 연계해준 데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한달에 8만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들이 사회와 지역으로 온전히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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