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의료분쟁 공정해결은 진실된 의무기록부터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의료분쟁 공정해결은 진실된 의무기록부터글·안기종 대표(한국환자단체연합회)

[쿠키 건강칼럼] 일명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된 11월30일은 공교롭게도 2014년 1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지 7시간 만에 사망한 전예강 어린이 생일이다. 예강이가 태어난 날, 예강이 사건이 계기가 돼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판정 시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자동적으로 개시되는 ‘예강이법’이 시행된 것이다.

이같이 의미 있는 11월30일에 예강이 엄마는 예강이가 사망한 그 병원 정문 앞에서 ‘예강이 의료사고 사망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눈물의 시위를 했다. 이 시위에는 의료사고로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낸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참석했다. 이들이 병원 앞으로 모인 이유는 예강이 의료사고 사망원인을 밝히는 결정적인 의무기록지 내용이 병원 측에 의해 조작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예강이는 대학병원 응급실 도착 당시부터 혈액수치나 맥박수를 고려할 때 응급상황이었다. 그러나 긴급을 요했던 적혈구(RBC) 수혈이 한참 늦어졌고, 수혈을 통해 생체 징후를 교정한 다음 검사를 하라는 소아혈액종양과와 소아신경과 협진 회신 결과도 무시됐고, 미숙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2명이 마취도 없이 40분 동안 무리한 요추천자 시술을 5회나 실시하다가 예강이는 결국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예강이 부모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신청한 조정신청이 병원 거부로 각하되자 부득이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의무기록지와 CCTV영상을 검토하다가 의무기록지에 예강이 의료사고 사망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적혈구(RBC) 수혈시간과 맥박 수치가 조작된 사실을 발견했다.

즉, 병원은 적혈구 긴급 수혈이 필요한 예강이에게 뒤늦은 수혈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시간 40분이나 일찍 적혈구 수혈을 한 것처럼 ‘간호기록지’에 허위 기재를 했다. 또한 응급실 도착 당시 예강이의 분당 맥박 수치를 담당 간호사는 고위험 상태인 137회로 ‘임상관찰기록지’와 ‘간호기록지’에 기재했으나, 담당 의사는 정상범위인 80회로 응급의료기록지에 허위 기재했다.

진료기록부, 간호기록지 등 의무기록지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과실 및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의료법에서 의무기록 위변조를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의무기록 위변조로 소송에서 불이익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에 비하면 실제 형사처벌을 받은 의료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종이의무기록이나 전자의무기록을 병원이 사후에 수정한 경우 수정 전후 기록 모두를 발급해 줘야 어떤 내용이 수정됐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은 수정 전 기록까지 발급해야 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수정 전 기록은 숨기고, 수정 후 기록만 발급한다.

또한 병원에서 전자의무기록을 수정하기 위해 접속을 하더라도 이러한 접속기록 자료나 수정내용을 별도로 작성하거나 보관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발생 시 수시로 전자의무기록에 접속해 소송에서 병원에 불리한 기록들을 수정해 의료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법원에서 패소한 경우 그 재판 결과에 순순히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병원에 의해 위변조된 의무기록지를 기초로 틀린 감정서가 작성되고, 이렇게 틀린 감정서를 근거로 법원에서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의료분쟁 해결은 진실한 의무기록에서 시작된다. 

국회는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종이의무기록이나 전자의무기록이 수정된 경우 수정 전·후 기록 모두를 발급해 주는 것을 의무화하고, 전자의무기록을 수정한 경우 관련 접속기록 자료와 수정내용을 별도로 작성‧보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입법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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