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장기 이식의 진화…기증자는 여전히 부족

[기획] 장기 이식의 진화…기증자는 여전히 부족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말기 암환자만이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장기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삶은 급격하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30대 미혼여성 환자 천 모씨는 만성콩팥병으로 6년 여간 투석 생활을 해 왔다. 천씨가 평범하게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신장 이식이지만, 적절한 장기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신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났다. 이제 막 생후 73일 밖에 안된 아기가 그 주인공이다. 출생 직후 뇌에 혈종이 발견돼 자연 회복을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생후 2개월만에 뇌사 소견 확인을 받았다. 이후 영아의 부모가 장기기증이라는 어려운 결심을 밝혔다. 이 아기 천사는 성인의 5분의 1밖에 안되는 신장 2개를 주고 세상을 떠났다. 국내 최연소 신장이식 공여자가 된 것이다.

또한 국내 최장수 신장이식 부부 공여자도 있다. 지난 5월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말기신부전 환자인 60대에게 배우자인 60대 후반 송 모씨가 신장을 기증했다. 통상 60대 후반에는 장기이식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나 정밀의학검사를 통해 배우자의 신장이 건강하다는 의료진에 판단에 따라 이식을 시행하게 됐다. 이들 부부는 혈액형이 각각 O형(수혜자)과 B형(기증자)으로 불일치했으나, 수혜자의 혈액 내 존재하는 항ABO 항체 제거를 위한 수술로 무사히 이식 거부반응을 없앴다. 수혜자인 남편은 아내의 신장이식으로 인해 수술 13일 만에 퇴원, 현재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식’ 수술도 놀라울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생후 2개월 된 신생아의 장기가 성인에게 이식되는 한편 혈액형 불일치 환자 간의 이식 등 병든 장기를 새 장기로 바꿔, 새 삶을 살게 하는 이식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영아가 성인에게 … ‘진화하는 장기이식’

이식은 단순히 기계 부품을 교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식자와 공여자 간의 이식으로 인한 거부반응을 이겨내야 하고 동맥과 정맥(핏줄)도 잇는 수술이다. 장기 이식수술은 과학과 의학, 전문의의 손길 등 모든 것이 동원되는 현대의학의 ‘꽃’이자 종합체다. 

이태승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장기이식 센터장)는 생후 2개월 된 영아의 신장 2개를 성인 여성에게 이식한 의사다. 이태승 교수는 “이식은 폐, 간, 신장, 췌장 등의 장기들의 혈관들을 잇는 것이므로 상당한 정교함을 요하는 고난이도 수술”이라며 “의학기술 발전으로 어린아이부터 고연령 환자까지 장기이식이 가능한 범위가 이제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장기 이식이 최초로 이뤄진 것은 1900년대 초반이지만, 성공을 한 시기는 50여년이 지난 1954년 미국 외과의사 조셉 머레이에 의해서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의 신장 이식을 성공했다. 

이식 발전의 역사는 곧 ‘면역학’의 역사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큰 차이점은 사람마다 혈액형, 유전자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밀의학이나 유전체 검사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도 인간 고유의 특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장기이식에 실패했던 초기, 큰 문제점은 기증자와 공여자 간 장기를 이식하면, 장기가 굳어버리거나 터져버리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면역거부반응인 것이다. 1962년 면역억제제가 등장하며 타인 간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는 1959년 성산 장기려 박사가 최초로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대량절제술을 하면서, 간이식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94년도에 생체 간이식 성공하는 한편 장기이식이 본격화 됐다. 이후 간이식, 신장이식, 골수이식 등을 비롯해 나아가 신체조직 이식까지 발전했다. 

현재는 미국, 독일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안면이식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이태승 교수는 “면역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교차검사 등 다양한 검사 기법 등이 도입되며 이식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결국 혈관과 혈관을 잇는 봉합기술은 곧 의사의 손기술이며, 이는 곧 수많은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기증없이는 이식도 없다” 

이식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기증자가 여전히 제자리수를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기증없이는 장기이식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7년 혈액투석을 시작한 이래 약 50년간 신장질환 영역에 풍부한 임상경험을 쌓아온 곳이 있다. 바로 계명대 동산병원이다. 다만 의료진에게도 장기이식 기증자가 적다는 것은 늘 숙제처럼 다가오고 있다. 조원현 동산병원 외과 교수(대한이식학회 회장)은 “더 많은 환자가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뇌사자를 적극 발굴하고 장기 이식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1명이 최대 9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뇌사 기증자는 외국에 비해 크게 낮으며, 뇌사 기증보다 생존 시 기증비율이 높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100만명 당 기증자수(뇌사자/생존시)는 스페인 36명/9명, 미국 27명/15명, 한국9명/37명이다. 또한 기증자 수에 비해 이식이 필요한 이식대기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이식대기자가 지난해 기준으로 2만7000명에 이르고 있어 생명나눔 활성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실제 이식대기자수/이식건수는 2011년 2만1861명/3798건, 2013년 2만6036명/3821건, 2015년 2만7444명/410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기증자수는 매년 2000여명에서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으로 한때 장기기증 서약자수가 늘었지만, 다시 제자리 걸음이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에서 집계한 국내 장기기증 현황에 따르면 국내 장기 기증자수는 2012년 2451건, 2013년 2337건, 2014년 2379건, 2015년 2494건, 2016년 9월 현재 195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종원 한국장기기증원 이사장은 “국내에서 장기이식 대기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뇌사자가 발생해도 가족들의 기증거부로 인해 안타깝게 기증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증을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식 기술은 발전했지만, 장기기증 문화는 여전히 발전하지 못한 것이 국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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